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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해병 사건

     

 
 
 

 

 

역사는 어쩌다 채해병 사건을 향해 달리게 되었나

 

6장. 임성근의 라이벌

 

임성근의 군 경력을 보다 보면, 전형적인 엘리트 군인의 출세 코스였다. 해군사관학교를 나와 소령 시절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실로 파견 생활을 했고, 중령 시절 대대장을 거쳐, 대령 시절엔 한미연합군사령부 지휘통제실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이후 별을 달고, 6여단장과 해병대사령부 참모장을 거쳐 소장으로 진급했다. 

 

임성근1 뉴시스.PNG

임성근 소장

출처-<뉴시스>

 

누군가 그의 경력만 본다면, 별걱정 없이 ‘탄탄대로’의 길을 걸은 군인으로만 생각할 거다. 하지만 정작 임성근에게는 누군가의 등을 바라보며, 아득바득 쫓아가야 하는 치열한 군 생활이었다.  

 

항상 임성근의 눈앞에는 그보다 한발 앞서 나가던 그의 동기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조영수』 

 

조영수1.png

조영수 (현) 합동참모본부 전비태세검열실장

 

드라마를 쓴다면, 임성근과 조영수 중 주인공감은 조영수다. 그의 인생엔 ‘드라마’가 있다. 제주도 강정마을 출신이 해군사관학교에 지원한다는 것 자체가 드라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그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만들지 않았나. 조영수는 그 강정마을 출신이다. 가난한 집안의 똑똑한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 중 하나가 ‘사관학교’였다. 그는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인해 3년 장학금을 주는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정말 그 정도로 가난했다. 이런 그에게 사관학교는 유일한 선택지였을지 모른다. 

 

세월이 흐르고, 그는 하늘이 점지해 준다는 별을 달고 해병대 9여단장이 됐다. 해병대 9여단은 제주도와 부속 도서를 방어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부대다. 제주 해군기지는 9여단이 지키고 있다. 그야말로 금의환향(錦衣還鄕)이다. 

 

그는 별을 달 때도 동기 임성근보다 빨랐다. 소장을 달 때도 동기보다 빨랐다. 준장과 소장 모두 조영수는 1차로 진급했다. 

 

제주일보.PNG

소장으로 진급하고 얼마 후

제주일보에서

조영수 해병대 제2사단장을 취재한 기사

출처-<제주일보> 링크 

 

제주도 섬마을의 가난한 집 아들인 조영수는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소위로 임관할 당시 국방부 장관상을 받을 정도였다. 

 

서울신문 김명수 임명.PNG

출처-<서울신문> 링크

 

원래도 동기보다 잘 나가던 그가 희망도 가질 수 없을 정도로 동기를 확실히 앞지르게 된 건, 김명수 제독이 합동참모의장에 오를 때였다. 그는 김명수의 곁에서 인사청문회를 준비하고, 현장에서 보좌했다(쪽지를 건네며 고군분투하던 모습이 언론사 카메라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김명수 조영수.jpg

출처-<국민일보>

 

김명수는 현역 중장이 승진해 합동참모의장이 되는 드문 사례를 재연출 했고(53년 만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딱 2번 밖에 없는 사례), 해군 출신으로서는 10년 만에 합동참모의장 자리에 올랐다. 이런 그를 옆에서 보좌한 게 조영수였다. 

 

조영수는 준장에 이어 소장도 1차로 진급할 수 있게 됐다. 

 

임성근은 늘 조영수에게 한발 뒤졌다. 조급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해병대에서 남은 동기는 그와 조영수밖에 없었다. 

 

채수근 상병이 순직하지 않았다면, 해병대 사령관은 그와 조영수 둘 중 한 명이 됐을 거다. 아니, 그 자리는 조영수의 자리였을 거다. 그는 늘 동기에게 한발 뒤졌다. 

 

이런 조급함이 그를 재촉했을지도 모른다. 

 

“동기보다 앞서야 한다.”

 

임성근. 그의 경력도 남부럽지 않았다. 그도 엘리트 군인의 코스를 고스란히 밟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가치는 상대적이다.”

 

회사 생활을 해 본 사람은 알 게다. 사람들은 자기와 '떨어져 있는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다. 친구, 친척, 동기, 동료... 임성근이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점은 조영수였을지도 모른다. 자기보다 한 발 앞서 있는 조영수. 그를 제치고 해병대 사령관으로 영전하기 위해선 역전의 한 방이 필요했을 거다. 

 

이때 그의 눈앞에 ‘길’이 보였다. 

 

『포항』

 

뉴시스 포항.PNG

출처-<뉴시스> 링크

 

어쩌면 그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쳐지나갔을지도 모른다.

 

“묘수 대신 정석이다.”

 

관리형 군대에서 군인의 진급을 위한 ‘정석 플레이’는 숫자와 홍보이다. 임성근은 그 기본의 ‘힘’을 눈앞에서 체감했다. 지금까지 그가 해왔던 일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여단장 시절부터 장병들의 눈총을 받아 가며 했던, “잇츠마린(It's Marine : 해병다움)”이 정답이었다. 

 

해병다움.png

출처-<해병대>

 

그는 이 ‘해병다움’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힌남노가 지나간 ‘포항’에서 드디어 성과를 얻었다.

 

7장. 위기 앞에 선 임성근의 자세

 

잠시, 재난 발생 시 군대의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재난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군대가 투입되는 장면을 종종 목격한다. 이건 재난 현장에 만만한(?) 군인들을 보내 고생시키는 게 아니다. 절대 잘못된 행위가 아니란 이야기다. 

 

출처 해병대.jpg

출처-<해병대>

 

특히나 해병대의 경우는 이게 임무다. 해병대 1사단은 신속기동부대로 편제되어 있다. 신속기동부대란, 전쟁 혹은 재난 등 비상 상황 발생 시 24시간 이내로 한반도 전역에 병력을 투사하는 걸 목표로 편제된 부대이다. 이 신속기동부대 임무를 해병대 1사단 휘하 여단들이 번갈아 가며 맡는다. ‘한반도의 오분 대기조’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거다. 이런 이유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해병대 1사단이 투입되는 건 당연한 거다.

 

2022년 3월 울진에 산불이 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합참은 해병대 1사단을 투입했다. 당시 사단장은 임성근이 아니었다. 임성근은 3개월이 지난 6월에 사단장이 됐다. 이후 또 3개월 정도가 지났다. 9월 초이지만 아직 무더위가 가시지 않았던 그즈음, 태풍 ‘힌남노’가 제주도,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를 관통했다. 특히, 경상도의 피해가 심각했다. 

 

지난 기사(링크)에서 말했듯, 힌남노의 피해 속에서 임성근은 장갑차까지 출동시켜 민간인을 구출하고, 사태를 수습했다. 전국적인 주목을 받은 건 물론, 얼마 전 대규모 폭우 피해에서 멍때리던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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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SNS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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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해병대>

 

그리고 1년 정도가 흘러 2023년 7월이 되었다. 또다시 폭우가 한반도를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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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중부 지방의 피해가 심각했다. 2022년 여름의 뜨거웠던 기억을 가진 그는, 2023년 여름에 다시 한번 그 기억을 재현하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언론에 나온 2023년 7월 임성근의 모습을 보자. 

 

7월 15일, 1사단은 경상북도 재난상황실로부터 재난 지원 요청을 받았다. 이틀이 지난 7월 17일 오전 10시 12분. 그러니까 신속기동부대가 재난 지역에 전개하자 임성근은 여단장에게, 

 

“피해복구 작전의 중점은 실종자 수색이다!”

 

라고, 지시했다. 

 

뒤늦은 지시에 장병들은 구명조끼 같은 안전 장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현장으로 이동했다(국방부가 확인한 해병대 수사단의 ‘언론브리핑’ 자료).

 

한겨레 표 내용.PNG

출처-<한겨레>

 

언론 보도상으로 판단할 때, 임성근은 ‘홍보’에 미쳐있는 모습이었다. 

 

“하의는 전투복, 상의는 빨간 해병대 체육복을 입게 하라.”

 

“훌륭하게 공보활동이 이루어졌구나” 

(사건 당일, 해병 병사들이 허벅지까지 입수해 실종자를 수색하는 언론 사진을 보며)

(임성근 사단장은 이 사진을 사고 발생 이후에 봤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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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경호 변호사 제공.jpg

임성근 사단장과 정훈공보실장 대화

출처-<김경호 변호사 제공>

 

이에 대해 임성근은 이렇게 반박했다. 

 

“(부하가) 자신의 지휘에 힘을 싣기 위해 왜곡 및 과장해 전파한 것으로 판단된다. (중략)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해병 1사단장 지시사항을 임의로 작성한 것으로 판단된다.”

 

- 임성근 사단장이 중앙군사법원에 제출한 진술서 中

 

대한민국 언론과 국민들은 채수근 상병의 죽음을 임성근의 책임으로 생각하고 있다. 경북경찰청에서는 임성근 사단장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수사하는 중이다. 즉, 임성근 사단장이 채수근 상병의 죽음에 결정적으로 관여했다는 거다. 

 

이에 대한 임성근의 입장은 이렇다. 

 

“현장 상황을 가장 잘 알고, 바로 조치할 수 있는 작전통제부대장인 육군 50사단장이나 현장지휘관이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안전 확보에 대한 책임이 있음도 당연하다 ...(중략)... 실제 작전활동이 진행되는 동안에 수반되는 다양한 우발 상황과 상황 변화 요소를 고려한 안전 확보 및 제반사항에 대한 권한과 책임은 작전통제부대인 육군 50사단이 가진다고 판단될 수밖에 없다.”

 

- 임성근 사단장이 중앙군사법원에 제출한 진술서 中   

 

작년 12월에 그가 중앙군사법원에 제출한 188쪽에 달하는 진술서. 그 진술서를 바라보면, '본인 입장'에선 억울한 듯한 감정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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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사건의 구성이 어떻든 간에 임성근은 자신에게는 병력을 지휘할 책임도 없었고, 지휘하지도 않았기에 책임도 없다는 거다. 물론, 현재 채 해병 사건에 분노하고 있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게 임성근의 방어논리인 것이며, 이건 말도 안 되는 변명이라고 분노할 것이다 . 

 

그렇다면, 임성근의 미래는 어떠할까? 그가 억울하든 억울하지 않든 간에, 이미 그는 군인으로선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다.   

 

대대장 시절, 자기 부하(부사관 한 명이 순직했다)의 죽음 앞에서 그는 군 인생 최대의 위기를 느꼈을 거다. 관리형 군대, 지휘하는 부대에서 사망사고가 나는 건 최악의 상황이다. 진급에 영향을 끼치는 건 물론, 지휘 관리에 문제가 있다면 자칫 잘못해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는 상황. '임성근 입장'에선 위기가 맞다. 

 

이 위험한 상황 앞에서, 당시 임성근 중령은 ‘혐의없음’으로 처리되며 이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다시 한번 '위기'가 찾아왔다. 언론은 1년 전과 달리 비난 화살을 날렸고, 온 세상은 그에게 손가락질했다. 

 

지금까지 나온 그의 발언과 진술서 내용을 토대로 임성근에게 빙의하여 생각 회로를 굴려보자. 그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억울하다. 죄의 유무를 떠나, 아직 죄가 판가름 나지 않은 상황임에도 이미 여론은 나를 죄인으로 만들었다. 내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는 이는 없다.” 

 

임성근은 그렇게 갈망했던 해병대 사령관의 꿈을 접어야 할 듯한 상황이다. 그 자리는 그의 동기인 조영수에게 돌아갈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조영수도 그 자리에 올라갈 수는 없을 듯하다. 

 

김계환 유임.PNG

출처-<오마이뉴스> 링크

 

1년 선배인 김계환 사령관이 예상과 달리 그 자리를 지키면서, 진급 적체가 시작됐다. 가뜩이나 보직 자리가 적어서 보직 돌려막기를 하는 해병대 장성급들은 김계환 사령관이 그 자리를 지키면서 모든 자리가 멈춰 서 있게 됐다. 

 

이대로 가면, 45기를 건너뛰고 후배들이 해병대 사령관 자리에 앉을 수도 있을 거 같다. 이제는 해병대 사령관이 아니라 명예로운 전역조차도 위태로운 순간이다. 

 

33년 군 인생을 이렇게 허무하게 망칠 수는 없었을 거다. 그럼, 그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추신: 해당 사건이 이렇게 꼬이게 된 이유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윤석열은 물론, 군 내부 기수 등, '군정치'를 이해해야 합니다. 부득이 이해를 돕기 위해 각 장에 따라 화자의 관점이 이동될 수 있으니,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