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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해병 사건

     

 
 

 

 

역사는 어쩌다 채해병 사건을 향해 달리게 되었나

 

4장. 해병대의 소원

 

“전쟁이 터졌을 때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전력은 특전사와 해병대 정도다.”

 

한 장군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 장군이 타군을 비하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한국군 전력의 실태를 걱정하며, 한탄 조로 말한 말이었다. 특전사와 해병대의 ‘부심’은 유명하다. 그리고 실제로 이들은 그런 ‘부심’을 부릴만한 자격이 있는 부대들이다. 

 

이들은 전쟁이 나면, 언제든 적지로 침투해 그들의 후방을 괴롭히는 전략부대들이다. 북한은 이들을 언제나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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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훈련 모습

출처-<해병닷컴>

 

그런 해병대 사령부가 1975년 해체됐다. 그리고 해군에 통합됐다. 해군에 보병 병과가 신설되며 거기로 편입된 것이다. 

 

그 후 12년이 흘렀다. 해군에 통합된 해병대에는 많은 문제점이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87년 해병대 사령부가 재창설됐다. 그리고 인사상의 문제와 권한의 경계를 재정립하기 위해 1990년 8월 해병대 사령관의 지휘 권한이 법률로 정리됐다. 

 

해병대의 역사는 1975년 사령부가 해체된 이후로 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독립”

 

해군에서 벗어나야 했고, 덩치를 키워야 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해병대는 작다. 다 긁어모아 봤자 3만 명이 되지 않는다. 용을 써서 기어 올라가봤자 별 세 개. 중장이 마지막이었다. 

 

서열로는 배려를 받아, 30여 명의 중장 중 1등 대우를 받지만, 명목상의 배려였을 뿐이다. 다 긁어봐야 1개 군단 숫자에 될까 말까 한 병력이었다(육군 1군단만 해도 휘하에 사단 3개와 5개의 여단을 거느리고 있다). 덩치를 키워야 보직이 늘어나고, 보직이 늘어나야 승진의 기회가 늘어난다. 상식이다. 

 

해병대는 독립해야 했다. 2013년 해군으로부터 예산이 독립됐다. 같은 해 무기체계 등의 ‘소요요청기관’에 해병대를 해군과 분리해 명시하는 방위사업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이 입법 예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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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해병대>

 

2014년에는 해병대에 항공병과가 정식 창설됐다. 그리고 2021년 해병대 항공단이 창설됐다. 1973년 해병대 항공대가 해군 항공대로 흡수된 이후 반세기 만에 이뤄낸 숙원이었다. 

 

2019년 군인사법이 개정돼 해병대사령관이 대장으로 진급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됐다. 

 

2022년 11월 국방부는 군기(軍旗)의 종류에 합참기와 육, 해, 공군기 외에 해병대기를 추가하는 군기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대통령 군 행사나 현충원 참배 등의 행사를 보면, 군기 4개가 나오는데 이때 해병대기도 같이 나오곤 했다. 그러나 이때까지 해병대기가 나오는 건 법적 근거가 없었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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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군 장성 진급 및 보직 신고식

제일 오른쪽에 해병대기가 보인다.

출처-<연합뉴스>

 

해병대의 군기를 법적으로 인정한다는 건 그 자체로 육, 해, 공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4군 체제로 향한다는 상징이었다. 

 

해병대의 독립을 향한 의지가 하나씩 현실화되던 그때 새로운 대통령이 등장했다. 보통 그래왔듯 이번 대통령도 후보 시절 해병대를 위한 공약을 내걸었다.

 

“중장기적으로 해병대를 독립시켜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4군 체제’로의 전환을 적극 추진하겠습니다.”

 

다른 대통령들도 후보 시절에는 해병대를 챙기려고 애썼다. 해병대 전우회 표를 생각해서라도 해병대에 대한 배려를 고민해야 했다. 실제 정책 방향도 해병대를 배려하는 쪽으로 계속 진행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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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대통령실>

 

그런데 이번 대통령은 달랐다. 단순 배려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해병대에 4성 장군이 나오게 만들 것 같았다. 안타까운 건 그 타이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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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7일 채해병 특검법안 촉구 기자회견

출처-<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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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9일 채해병 특검법안 촉구 기자회견

출처-<연합뉴스>

 

채해병 순직 사건으로 정국이 한참 요동치던 2024년 4월 23일. 

 

해병대 사령관을 대장으로 진급시켜 합참차장으로 보임하는 방안을 대통령실이 검토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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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서울경제> 링크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해야 할까? 

 

해병대는 필생의 소원을 가장 좋지 못한 순간에 맞닥뜨리게 됐다. 

 

5장. 전쟁 없는 군대에서의 성과

 

모든 존재는 양면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호랑이 선생님인 분이, 다른 이에게는 속정 깊은 선생님으로 보일 수 있다. 

 

“인간은 다면적인 존재이다.”

 

이 다면적인 존재를 인간은 채 50%도 이해하지 못한다. 타인을 100%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 1/3이라도 이해한다면, 성공한 거다. 평생 같이한 반려자도 상대방을 모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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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임성근 역시 마찬가지다. 그를 기억하는 두 가지 시선이 있다. 

 

“참군인이다.”

 

“해병대는 해병대다워야 한다며, 강한 훈련과 강한 군기를 요구하는 전형적인 무인이다!”

 

그를 기억하는 시선 중 호(好)의 이야기들은 대체로 이러했다. 초급 장교 시절부터 군인으로서의 기본자세와 군기, 강한 훈련을 강조했던 무인(武人)으로서의 모습. 그게 임성근이라고 한다. 

 

“해병대다움? 이거 남들한테 보여주는 것만 신경 쓰는 거다.”

 

“성과주의와 대외적인 공보 활동에만 신경 쓰는 전형적인 정치군인이다!”

 

그에 대한 불호(不好)의 이야기들이다. 이 호(好)와 불호(不好)를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이 있다. 

 

“잇츠 마린(It's Marine : 해병다움)”

 

해병다움 출처 해병대.PNG

출처-<해병대>

 

임성근이 해병 6여단장 시절부터 시작해 1사단장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전파했던 캠페인이었다. 간단히 말해 해병대다움을 강조하기 위해 각종 암기사항과 실천과제 등을 해병대 병력에게 교육시킨 거였다. 

 

이게 누군가에겐 해병다움을 교육하는 것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암기 강요와 부조리로 보일 수 있다. 

 

내 시선으로 지금 군인들을 보면, 그들은 진급하기 위해서 이런 캠페인이나 ‘홍보’가 필수적이라고 보는 듯하다. 요즘 군대를 보며 이 말을 떠올리곤 하는데, 

 

“양병십년 용병일일 (養兵十年 用兵一日)”

 

‘병사를 키우는데 10년이 걸리지만, 병사를 사용하는 데는 하루밖에 걸리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한 번의 전쟁 승리를 위해 10년을 준비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 말의 핵심은 ‘양병(養兵)’에 있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용병(用兵)이다. 대한민국 군대는 전쟁 없이 살아온 군대이다. 휴전 이후 70여 년이 흘렀다. 그사이 무장공비 소탕 작전도 있었고 많은 해외 파병 등의 경험도 있지만, 대규모 병력동원으로 전투를 치른 경험은 월남전이 고작이었다. 

 

전쟁이 없는 군대에서 장교가 보여 줄 수 있는 ‘성과’가 무엇일까? 

 

‘승리’라는 가장 중요한 평가 요소가 배제된 군인들은 보여주기 위한 것에 집착하게 된다. ‘관리자형 군인’의 출현이다. 잘 싸우는 걸 준비하는 것 보다, 사고가 나지 않고, 겉으로 보여주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이걸 탓하거나 욕할 수만은 없다. 

 

휴전으로 70여 년간 전쟁 준비를 한 나라이지만, 휴전 이후 전투가 사라진 상황에서 징집된 대규모 병력을 관리하는 상황. 이 엇박자 속에서 어떤 군인을 승진시켜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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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규 소장

출처-<대한뉴스>

 

제1군단 부군단장(소장) 자리까지 오른 최창규 장군이란 분이 있었다. 3사 출신으로 소장까지 갔다는 건 그 자체로 엄청난 능력이 있다는 소리다. 실제로 최창규 장군은 포병 작전 분야 전문가로 포병학교장까지 역임할 정도로 포에 있어서 진심인 인물이었다.

 

소장으로 전역한 후에도 그냥저냥 사라진 게 아니라 국방부 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 단장으로 갔다. 얼마나 능력 있는 사람이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최창규 장군의 사단장 시절의 일화는 유명한데, 군대도 ‘대학’이란 마인드로 군인들을 공부시키는 데 여념이 없었다. 야간연등은 기본이며, 아무거나 국가자격증을 따면 3박 4일 휴가에 토익 몇 점이면 휴가 보내주는 등 군대를 공부하는 곳으로 만들었다. 

 

35사단이 전라북도. 즉, 후방에 위치한 곳이니 가능한 이야기이기도 했을 거다(전방의 경우는 근무 때문에 휴가를 어떻게 보낼지 고민할 정도로 인력이 부족하다). 어쨌든 최창규 장군의 경우는 병사들의 복지와 자기계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덕장이란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이걸 나쁘게 볼 수 없다. 후방 사단에서 징집된 병사들을 위해 자기계발을 강조한다는 게 뭐가 잘못된 걸까? 더구나 싸우지 않는 군대가 말이다. 

 

실제로 국방부는 1970년대부터 병사들의 자격층 취득을 권장했고, 정권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원칙적으로’ 자격증 취득을 환영했다. 2000년대에는 ‘1인 1자격 운동’을 지원했고, 문재인 정권 시절에도 적극적으로 자격증 취득을 지원했다. 병사 자기계발비에 자격증 취득 시험을 위한 응시료가 들어가 있을 정도로 자격증 취득에는 호의적이었다. 이 기사를 보는 독자들도 군대에서 열심히 자기계발하여 일정의 성과를 거둔 병사들을 좋은 눈으로 봤을 거다. 

 

꼭 자격증이 아니라도, 자신들이 관리하는 병력 중 누가 ‘특이한 시험’에 합격한다면, 그 자체로 홍보 소재로 쓰일 수 있다. 군에서 임용고시 합격했다는 이야기는 미담이 되고, 지휘관은 그렇게 언론에 노출된다. 

 

‘승리’라는 평가 항목이 사라진 상황에서 지휘관이 자신을 어필 할 수 정량평가 요소는 관리의 숙련도(사고가 나지 않는 부대 운영)와 ‘숫자’였다. 그리고 자격증과 더불어, 단연 숫자로서 눈에 띌 수 있는 건 뭐니 뭐니 해도 (병사들에게는 지긋지긋한) ‘특급전사’다.

 

(특급전사는 2008년부터 시행됐기 때문에 오래 전 제대한 분이면 모를 수 있다. 간략하게 첨언하면 이렇다. 병사들은 주기적으로 체력과 사격 그리고 기본적인 군사 지식 및 기량을 평가받는다. 그리고 분야별로 합격/불합격 혹은 특급, 1급, 2급, 3급, 불합격으로 정해진 점수를 받는다. 모든 분야에서 합격 및 특급을 받으면 ‘특급전사’라는 칭호를 부여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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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급전사는 군복에 특급전사 마크를 박는다.

부대마다 마크는 차이가 있다.

 

최우수 전투력 보유 군인을 지칭하는 ‘특급전사’. 지휘관들은 이걸 자기의 성과로 생각했다. 대부분의 ‘육군’ 지휘관들에게 이 특급전사 숫자는 신경 쓰이는 숫자일 거다. 

 

특급전사와 자격증과 같은 숫자에 신경 쓰는 걸 나쁘게 봐야 할까? 관리형 군대에서 정량평가로 보일 수 있는 ‘숫자’에 지휘관이 민감한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임성근도 자격증에 민감했다. 훈련 중인 부대의 인원이 자격증 시험을 본다고, 훈련 도중 그 병사만 시험 치러 보냈다고 했다. 

 

시선에 따라 다르게 보일 거다. 앞에 언급한 최창규 장군의 경우 ‘덕장’으로 보이겠지만, 임성근의 경우는 ‘진급에 미친 지휘관’으로 보일 수도 있을 거다. 

  

모든 존재는 양면이 있다. 

 

<계속>